그룹명/짧은 소설 27

비행기

얼마전에 비행기를 탔어 그때 뭔가 봤는데 캄캄해서 뭔가 보일리가 없었는데 아무튼 난 봤어 나만 봤는지 다른 사람도 봤는지 그것까진 모르겠지만 별 일이 있었던 건 아니야 연착은 했지 한시간 정도 하지만 그것 때문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아 하늘에 있었던 걸까? 너무 하늘 깊숙이 들어갔었나? 그래야만 거길 갈 수 있었나? 어쩌면 반대로 그걸 보게 하기 위해 비행기가 그리로 갔던 건 아니었을까? 반드시 거길 지나가야 했을까? 항로를 이탈했는지 아니면 거기가 항로였는지 그런 건 잘 몰라 그걸 누가 알겠어? 다른 사람들도 몰랐을 거야 아마 내가 본 건 좀비였어 우리들 모양의 좀비 하지만 기내에 있던 승객들의 모습이 비친 건 아니었어 그건 좀비였으니까 좀비라는 건 좀 다르게 생겼거든 비슷한 점도 없진 않지만 아무튼 달라..

미이라와의 소통

물론 사천년전에 사망한 걸로 판명된 이 미이라분과는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없죠 하지만 이 분이 남기신 글을 읽은 건 사실이거든요 너무 일방적이어서 그것을 감히 소통이라고 부르지는 못 하겠지만 부르지만 못 할 뿐이죠 사실 꼼꼼히 따져보면 소통을 한 걸로 보이거든요 이 분께서 남기신 글을 읽어보면 알 수 있어요 이 분의 글에는 분명 제가 지난달에 친구에게 했던 말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틀림없어요 물론 이 분이 절 아셨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제가 누구인지 아는 게 과연 소통의 필수 요건일까요? 이 분이 음성언어로 제 말을 들었다는 건 아니에요 어차피 들었다고 해도 못 알아들으셨겠죠 왜냐하면 이 분은 아시다시피 고대 이집트에서 사셨던 분이고 저는 보시다시피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고 고대 이집트어를 조금 배우긴 ..

크리스마스 선물

모두에게 배달된 선물상자가 있다는 건 다들 알고 계시겠죠? 거기에 아주 예쁜 빨간색 리본이 달려 있다는 것도요 리본이 충분히 튼튼한지는 모르겠지만 그 리본은 풀어야 한다고 하네요. 제대로 풀지 않으면 상자는 열리지 않는다고해요 그러니까 그 리본을 억지로 뜯거나 가위로 자르거나 해버리면, 상자안의 문이 영원히 닫힌다고 해요.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그 리본을 푸는 일을 일컬어 '열다' 라고 말했다고 전해지죠. 영어로 open 말이에요. 그래서 그 선물 상자는 '여는' 것이 되어 버린거에요. 그러니까, 상자안의 문을 '여는' 것이죠 문이 열리면 안쪽으로부터 어떤 목소리가 들려온다고 해요 할머니의 목소리일때도 있고 할아버지의 목소리일때도 있다고 하는데 젊은 사람의 목소리인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하네요. 아이의 ..

무슨 소리2

작년 겨울에 명동에서 순이를 본 건 왠지 비밀로 했어요 하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봐서 그랬던 것도 있지만 그게 순이였는지 확실치 않아서 그랬던 것도 있어요 학교에서 보던 모습이랑은 많이 틀리더라고요 순이가 원래 보영이나 현숙이처럼 완전 모범생같은 느낌은 아니지만 그래도…… 음…… 그렇다고 지혜나 혜정이 같은 애들처럼 보였다는 건 아니에요 입고 있던 옷도 그렇고…… 아, 촌스러워 보였다는 건 아니에요 순이는 옷테가 좋아서 뭘 입어도 간지가 나니까요 하지만 뭐랄까…… 놀러나온 느낌이 아니었달까요? 굉장히 진지한 표정을 누굴 찾고 있는 것 같았는데…… 써놓고보니 딱히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네요 그냥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순이에대한 생각 때문에 그렇게 본 걸 수도 있어요 언젠간 순이에게 물어 볼 기회가 있겠..

무슨 소리 1

쿵 쿵 또 저 소리가 들려오네요 도대체 얼마나 몸집이 크면 저런 소리를 낼 수 있는 걸까요? 공룡이라면 브론토 사우루스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은데요 정말로 바깥엔 공룡이 살고 있는 걸까요? 하지만 창밖을 아무리 바라봐도 공룡같은 건 없는데 공룡은 커녕 강아지 한 마리도 보이질 않죠 그냥 텅 빈 운동장 뿐이에요 쓸쓸하게도 오늘은 체육하는 애들조차 안 보이네요 “순이 너 집중 안 하니?” 참고로 말하자면 제 이름은 순이가 아니랍니다 순이는 제 친구예요 그러니까 넓은 의미로 봤을 때는요 사실 말을 해 본 것도 몇 번 안돼요 그것도 다 최근일이고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휴 넌 진짜…… 머리도 좋은 애가 왜 그렇게 말길을 못 알아 듣니? 그건 그냥 창밖으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니까……” 그럼 어떻게해야 볼 ..

시카고 피자

시카고 피자라고 쓰여진 건물 안에는 시카고가 있나? 바보 같은 소리마 시카고는 커 그렇지만 저 건물도 꽤 큰데 그래 저 건물도 크긴 해 그럼 가능하잖아 그래 가능하지 그렇지만 그렇게 단순하진 않아 그럼? 복잡해? 그래 복잡해 그래도 설명해봐 그래 저 안에 시카고는 없어 그렇지만 시카고와 관련이 아예없다고만은 할 수 없을 거야 그래? 그래 심지어 시카고도...... 아주 약간은 들어 가 있을지도 모르지 시카고가 있어? 그럼 시카고네! 아니! 아니야 그게 아니야! 시카고라는 게 아니라! 그럼? 시카고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관련? 그래 관련 어떤 관련? 글쎄........ 그건 나도 모르지 그래? 그럼 어쩌지?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물어보긴 누구에게 물어봐? 애초에 발상..

경계가 어디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 건대? 건대는 건국대학교 아니야? 건데 라고 했거든? 그래~~ 지금은 건데라고 했지 야 뻥치지 말아줄래? 니가 데랑 대를 발음으로 구분한다고? 글쎄 어떨까? 야 됐고 대답이나 해 괜히 말돌리지 말고 누가 말을 돌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그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냐 그랬지? 음...... 여기서부터 한 저기까지쯤 될려나? 야 그런 말은 나도 하겠다 그러니까 저기가 정확히 어디냐고! 정확히? 뭐 몇 미터 몇 센티 이렇게? 어 몰라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이거봐 다 뻥이네 ......... 그래? 그럼 너............ 이거 받을 수 있어? 얍! 앗! 야 송혜주! 너 뭐하는 거야 갑자기? 미쳤어? 그거 어떻게 잡았어? 뭐? 방금 그 동전 어떻게 잡았냐고 궤도 함수식이라도 세웠어? ..

파이 뺏기

많이 먹는 게 목적이면 많이 가진 애들 한테나 가봐 내 건 얼마 안돼 봐봐 이게 전부야 거짓말 하는 게 아니라고 뺏는 연습을 하는 거라면 그래 잘 왔어 니가 이길 것 같지? 그래 내 생각도 그래 순순히 내 주진 않겠지만 말이야 뭘 놀라고 그러니? 설마 그냥 줄 줄 알았니? 내가 왜? 내가 왜 너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거라고 생각했어? 약해 보인다는 건 나도 알아 그건 사실일지도 착해 보이니? 그건 사실도 아니지만 보아하니 너도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왜? 왜 그런 오해를 했니? 내가 너에게 내 것을 순순히 내 줄 거라고 가진 게 얼마 안되니까? 고작 이거가지고 치사하게 구는 게 못 마땅한 거니? 그렇지만 보렴 이건 내 전부야 바보가 아니라면 알텐데 이게 없으면 난 그냥 굶어야해 어차피 그..

캐비닛

백 스물 다섯개의 캐비닛들이 일렬로 죽 늘어서 있다해도 별로 궁금할 건 없죠 안에 뭐가 들어 있는 지 아는 건 하나도 없지만 무슨 상관인가요? 겉보기엔 다 똑같아 보이는데 그러나 그 중 한 개의 캐비닛 문 앞에서 외계인이 경비를 서고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죠 그거 하나는 좀 특별해 보이지 않겠어요? 어쨌거나 외계인이 경비씩이나 서고 있으니까요 그 외계인이 몇 발자국쯤 앞으로 걸어나온다면 어떨까요? 외계인에게는 발이 있고 보폭은 2미터쯤 됩니다 그럼 지키고 있는 캐비닛 문이 어느 건지 특정하기가 애매해지겠죠 그래요 외계인이 캐비닛에서 멀어질 수록 지키고 있는 캐비닛이 정확히 어떤건지는 알 수가 없게 됩니다. 그렇다고 외계인과 캐비닛이 아무 상관도 없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럴리가요 그 정도로 멀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