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사천년전에 사망한 걸로 판명된 이 미이라분과는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없죠 하지만
이 분이 남기신 글을 읽은 건 사실이거든요
너무 일방적이어서
그것을 감히 소통이라고 부르지는 못 하겠지만
부르지만 못 할 뿐이죠
사실 꼼꼼히 따져보면 소통을 한 걸로 보이거든요
이 분께서 남기신 글을 읽어보면 알 수 있어요
이 분의 글에는 분명 제가 지난달에 친구에게 했던 말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틀림없어요
물론 이 분이 절 아셨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제가 누구인지 아는 게
과연 소통의 필수 요건일까요?
이 분이 음성언어로 제 말을 들었다는 건 아니에요
어차피 들었다고 해도 못 알아들으셨겠죠
왜냐하면 이 분은 아시다시피 고대 이집트에서 사셨던 분이고
저는 보시다시피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고
고대 이집트어를 조금 배우긴 했지만 친구에게 말 할 땐 분명 한국어로 말 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 분과 저는 어떤 방식으로 소통을 할 수 있었을까요?
텔레파시? 그렇다면 혹시 고대의 신을 통신의 매개체로 활용한 걸까요?
요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처럼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분의 경우 신탁이라는 형태로 제가 한 말을 들었던 거죠
그러니까 자동번역기능이 발현된 신탁으로 말이죠
그래도 고대의 신이라면 4천년정도의 시간쯤은 자유롭게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지 않았을까 싶은데
역시 무리일까요? 그정도 스펙은 아니었을까요?
하긴 뭐 이 당시 사람들이 들었다던 신탁을 꼼꼼히 읽어보면
고대의 신에게 그정도의 스펙은 없었던 것 같기도 해요
물론 들은 사람들이 제대로 못 알아들었을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요
하지만 신이 직접했다는 말을 읽어봐도 뭐랄까 좀..... 세련되지 못 한 부분들이 좀....... 그러니까......
아무튼 저는 좀 그렇더라고요
그나저나 과거는 변하지 않는 걸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만일 변했다한들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야기를 써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뒷부분을 쓰다가 너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앞에 썼던 부분과 인과관계가 맞지 않을 경우에는
그냥 앞 부분을 고쳐 버리기도 하거든요 뒷 부분에 맞게요
물론 등장인물들은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겠죠
하지만 독자는 어떨까요? 그러니까 아주 훈련이 잘 되어있는 독자라면 말이에요
뭔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정도는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아주 어슴푸레하게라도 말이죠
물론 확신을 할 순 없을 거예요 결코 그럴 순 없겠죠 작가가 인터뷰에서 밝히기라도 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았을 경우에는 증거도 없고 말이죠 물론 집요한 성격의 독자라면 뭐 어떻게든 작가와
컨텍을 해서 물어볼 수도 있겠죠 물론 작가가 정직하게 대답을 해 줄 거라는 보장은 없겠지만
하지만 제 경우에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네요.
그러니까........ 누구에게 물어 봐야 하나요?
물론 우리는 그래요, 이 세계의 등장인물이기도 하면서 독자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여기까진 전혀 문제가 없어요
하지만 작가이기도 하거든요
이 부분이 참 어렵단 말이에요
결국 물어볼 사람이 없단 뜻이잖아요?
그래서 전 이걸 거꾸로 뒤집어 본 겁니다
맞다고 대답해 줄 존재가 없다면
틀렸다고 대답해 줄 존재도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에요
제가 이 미이라분과 소통을 했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거죠.
그러니까 작가로서의 권리를 행사한 거죠
물론 동료작가들이 좀 많긴 하지만........
아무튼 뭐, 클레임을 받은 것도 아니니까요 아직까지는
그런데 왜 하필 저는 여기에 계신 이 미이라분과 소통을 한 걸까요?
어쩌면 이 미스테리야 말로 무엇보다도 중요한 미스테리가 아닐까요?
그러니까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 부분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